로그 이전 대화
헥터: 여~ 다른 길드 사람들은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겠어?우리 길드 끝내주지? (너스레를 떨며 가볍게 손인사를 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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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계 이슈로 대화 소실- 일상이야기+ 늘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시그마와 가까워지고싶은 헥터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시그마에 대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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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마: 나... 그렇게 꽉 막힌 사람으로 보였어? 좀 충격이다... ... (밀어낼 생각은 없었으나, 두 걸음 물러선 만큼 다가가지도 않는다. 마냥 여유로울 것만 같던 낯도, 당신의 말을 듣는 동안 초조한 시선이 왔다 가는 게... 제 얘길 해야만 하는 상황이 껄끄러운 모양.)
(끝날 즈음엔 드물게 긴장한 기색이다. 언뜻 보기엔 알아채기 어렵다.) 말했잖아... ... 헥터 씨는 상냥한 사람이라고. 남의 인생에 실컷 참견해도 괜찮을 텐데, 안 그러니까. 난 그냥 바보인 채로 있기만 하면 되는 게 좋았거든. ... ...왜지? 그게 싫었나?
(뚝 끊긴 말. 조용한 공기를 무마하려는 듯 웃어보려다가도, 결국 풀이 죽어 눈 내리깔고 만다. 말 돌릴 때가 아닌 것쯤은 잘 안다. 검은 옷 소매 붙잡았다.) 그런 걸 어떻게 전부 말을 해. 나는 헥터 씨랑 계속 사이좋게 지내고 싶단 말이야. 그쪽 같은 사람은 이런 기분 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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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터: 나는 그냥.. (당신을 처음봤던 날을 떠올린다. 술을 마시지 않을때의 당신이 꼭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았을때는, 그저 당신이 절제 못하는 사람 쯤으로 비추어지는 것이 싫었다. 가끔은 적당한 거리에 있음으로 인해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당신에게 제가 그렇다면 언제든 아무것도 모르면서 매번 귀찮게 구는 사람을 자처했을테다.) 그냥, 궁금했어. (언젠가 들었던 곤란하면 얼굴에 손대는 타입이냐는 말이 괜히 머리를 스쳤기에, 풀죽은 낯을 가만 내려다보며 소매를 붙잡은 손을 가볍게 쥐었다.)
내가 그런 기분을 계속 몰랐으면 한다면 그렇게 할게. 그 정도쯤은 알아들을 수 있어. 매일 아침 인사하고, 너무 취했을때는 끼어들어서 그만 데려간다고 하는 것들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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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마: 그러니까, 대체 왜 그런 게 궁금하지... ... (제 발치만 바라보는 시선이 혼란스럽다. 보이지 않을 것을 알아 더 그렇다. 헥터 시솜은 성실하고 다정한 사람. 그런 주제에 파고들지 않아 약한 면을 보일 필요도 없는... ...타인? 시그마는 종종 호프 클럽의 동료들을 생각했다.)
(엉망이 된 퍼즐 같은 기억 속에서도 그 사람들의 얼굴만큼은 어째서 선명한 건지... ... 그 눈부신 면면들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자면, 차라리 당신이 아주 비겁한 사람이었다면 달랐을까? 그런 가정을 하고 싶었던 날이 있었던 것도 같다. 맥없이 잡힌 손끝이 서늘하다. 시선 따라간다.)
별 거 아니야... 그냥, 정신 들 때면, 도저히 살고 싶지가 않아. 솔직히 뻔하잖아... ... 그래도 당신들은 몰랐으면 했어. (결국 나약한 말이나 뱉고 만다. 이제 당신이 정말로 타인이 될 것만 같았다. 익숙한 낯 걸고 고개 들면, 미소.)
... ...실망했어? 하던 건 해 주는 거다? 나 취하면 집도 못 찾는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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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터: (오랜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근간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 결여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당신의 물음 앞에서는 어쩐지 자주 같은 변명을 하게 되었다. 변덕이라는 말, 그리고 그냥, 이라는 대답.) 5년이라는 시간동안 한결같은 사람은 없겠지만, 알다시피 넌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잖아.
어느 날에는 누가 보건말건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어. 어느 날에는 내게 말을 걸어줬고. 그리고 어느 날에는 네가 나에게 의지하지 않았으니까. 네가 비틀거릴때 붙잡을 수 있는게 오직 취기 뿐이라면 적어도 그 자리에서 손을 내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주제넘은 생각을 잠깐 한 적도 있었지.
(정해진 선 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있고, 저 또한 구태여 그 선을 넘으려하지 않았다. 실망했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것이 바람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때문에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미소지어보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지내자. 익숙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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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마: (일련의 말들을 전해듣고 있자면... 죄 지은 사람처럼 다시 고개 숙인다. 나는 당신의 상냥함이 향하기엔 오점 같은 사람이니까. 지난 시간 내내 부던히도 외면하고 싶었다. 이리저리 시선이 향하는 게, 늦은 후회라도 하는 건지. 온전치 못한 말을 정신없이 쏟아놓는다.)
(헥터 시솜에게 의지하는 일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 나 안아주면 안 돼? 추워서. 나 아팠을 때 해 준다며. 싫으면, 어, 새 여우 가지고 싶어. 빨간 걸로... ... 라일라 친구 필요한 것 같아. 근데 귀찮으면 안 그래도 돼. 아니다. 그냥 다 잊어버려... 그러면 우리, 계속 친한 거지... ...
(말 끝이 흐리다. 눅눅한 것도 같다.) 차라리 실망했다고 해 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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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선 이가 모든 말을 쏟아낼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응시하였다.
슬픈건지, 기꺼운건지 모를 표정으로 가볍게 당신의 귀를 한참이나 틀어막았다.)
∞
𝄇
중앙부와 외곽. 따뜻한 멘션과 내일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판잣집. 유능한 연구원과 떠돌이 나그네. 표면상의 이해가 오고가는 관계 앞에, 두 사람은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 누군가는 정상을, 누군가에겐 바닥을 향해가던 길 위에서 헥터와 시그마는 서로를 만났다.
'왜 저렇게 술을 많이 마셔?'
헥터는 우리가 서로 같은 눈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는 안대를 벗는 일을 꺼리지 않았기에, 시그마 또한 그럴 것인지에 대해 짧은 궁금증을 품었다. 그것이 당신에 대한 호기심의 시작이었다.
술에 취하지 않은 날의 시그마는 무척이나 우울해보였다. 헥터는 그를 안아주는 대신 낡은 턴테이블에 LP판을 올리고 손을 맞잡는 일을 택했다. 눈에 덮인 안대를 벗어던지고 함께 춤을 추는 때면 헥터는 더 이상 도망가지 않아도 무언가를 잃는 것을 겁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을 감는 순간부터 다시 뜨는 순간까지 맞잡은 그 온기가 나를 떠나지 않을거라 확신하는 순간 순간마다 찰나에 머무르는 것을 겁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다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하는 것들이 나를 내버려두고 죽어가는 이 가파른 세상에서, 이번에는 변하지 않을 행복을 찾아보겠노라고.
빛을 등지고 태어나던 날부터, 외곽의 가장 어두운 곳을 밝히기 위해 전진했다. 더 이상 바라는 것도, 후회할 것도 없으리라 생각했던 인생이 한 순간에 바뀌는 경험이란 몹시도 기꺼웠고, 헥터는 앞으로도 ― 살아가고 싶어졌다.
맞잡은 손이 따뜻했기 때문에.
당신이 나를 보며 웃음지었기 때문에.
소금기 어린 바람은 여전히 많은 걸 허물어뜨리고 ,세상의 무엇 하나 전과 달라진 점 없었으나,
지나온 모든 다리가 무너졌을지라도, 우리에게는 걸을 길이 있다. 서로 같은 눈이 망가졌을지라도, 여전히 앞을 바라볼 수 있다. 잔 바람이 부는 부둣가의 어귀에서 헥터의 인생은 전환점을 돌아 나아간다.
이번에는 빛을 향해서.